【에이블뉴스 백민 기자】 울산광역시 시민의 재산권과 법적 권리를 공적으로 기록·증명하는 울산지방법원 등기국, 정기원 씨(청각장애, 50세)의 일터다.
올해 9월부터 울산지방법원 등기국에 출근한 정기원 씨는 원래 부동산 및 법인등기부등본, 인감증명서를 뽑을 수 있도록 키오스크 안내와 민원 응대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 3주간 정기원 씨를 지켜본 결과 단순 키오스크 안내만을 하기에는 아쉽다고 생각한 등기과 직원들은 그녀에게 더욱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발급 창구에서 일을 해보라고 추천했다.
이에 현재는 민원인들이 원하는 발급을 창구로 와서 요구하면 부동산이나 법인등기전부사항증명서 등을 발급해 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정기원 씨는 “지난해 인공와우 수술을 하면서 지금은 보청기를 끼면 사람들과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 과장님께서 굉장히 의욕이 넘치고 제가 일할 수 있게끔 믿고 맡겨주신다. 덕분에 더욱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를 맡게 됐지만, 처음에는 법률 용어도 생소하고 장애 특성상 처음 듣는 단어는 알아듣기가 힘들어 정말이지 울면서 열심히 일했다”며 웃었다.
정기원 씨는 약 24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해 왔다. 정신의학과에서 상담을 해왔지만, 15년 전 청각장애를 가지게 됐다.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일이었으나 장애로 인해 불가능해 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업무를 담당하며 메모지와 화이트보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며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간호사를 그만두게 됐다.
정기원 씨는 “퇴직 전 2년 동안 무상휴직을 했는데, 일이라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때 알게 됐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일을 하지 않으니 우울해지고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며, “나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나의 존재가 오롯이 정립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정기원 씨는 퇴직 후 계약직으로, 단기간 기간제 근로자로, 작은 일이라도 계속해서 일을 해 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과 법원행정처가 협력해 추진한 중증장애인 맞춤형 직무모델 개발 및 연계 지원 사업 ‘법원행정처 중증장애인 시간제 일반 임기제 공무원 채용’은 좋은 기회였다. 현재는 1년 임기제이지만 추후 5년씩, 총 10년까지 재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기원 씨는 “과장님께서 행정·사무 일을 맡기고 발급 창구에서 일을 하도록 인사과 승인을 받는 등 노력하신 것도 더 전문적인 업무를 맡으면 재계약 할 때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법원행정처 중증장애인 시간제 일반 임기제 공무원은 5명이 채용됐다. 동기들과 단톡방이 있어서 대화를 하는데 ‘맞춤형’이라는 것이 정말 알맞은 단어 같다. 중증장애인은 장애유형과 정도 등 그 범위가 넓어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업무가 될 수도 있는데 각 근무지에서 각자의 특성에 맞게 직무와 근로환경을 유연하게 잘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한국장애인개발원과 법원행정처가 채용 3개월이 됐다고 간담회를 가지고 피드백을 주었는데, 단순히 일자리를 연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관리와 모니터링,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비롯해 동기들의 채용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업무를 잘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아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고.
정기원 씨는 “등기국에서는 많은 편의를 받고 있다. 할 수 있는 업무는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전화 업무 등 장애로 인해 힘들다고 이야기한 업무는 제외하는 등 장애를 잘 이해하고 고려해 주고 있다”며, “법원행정처가 이런 방식으로 중증장애인 채용이 올해 처음이어서 등기과에서도 많이 고심하고 준비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증장애인이기에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기 쉬운데 보조적인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직업적인 요소들을 적용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희 동기 5명 모두 잘 적응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만큼 내년에 이 사업을 통해 추가로 중증장애인을 채용한다면 전국적으로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서길 기대해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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